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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천국보다 아름다운" 혹시 이것도 꿈?

by imtbp 202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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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아름다운" 혹시 이것도 꿈?

드라마를 보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질 때가 있다. 특히 〈천국보다 아름다운〉처럼 환생, 전생, 죽음과 삶이 섞여 있는 작품에서는 관객도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게 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현실인가, 환상인가?"

최근 방영분에서 시청자들이 품기 시작한 의문은 바로 이거다.


"혹시 이 모든 게 영애의 꿈이었던 건 아닐까?"

 

뇌피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퍼즐처럼 흩어진 장면들이 서서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의 서사를 바탕으로 "천국보다 아름다운 영애 정체와 꿈일 가능성"을 근거 있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단서: 고낙준, 왜 영애 장례식엔 가지 않았나

이 드라마에서 고낙준은 '우체부'다. 죽은 이와 산 사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을 안아주기도 하고, 결혼식장에도 등장한다. 말하자면 천국과 이승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정작 영애의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았다.

이 점이 의문스럽다. 해숙에게서 "솜이가 영애다"라는 말을 듣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심지어 솜이에게 직접 “너 영애 아니지?”라고 묻는다. 낙준이 우체부로서 여러 일을 해내는 능력을 생각해보면, 영애의 죽음을 확인하거나 장례식장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는 단순한 설정의 허술함이 아니라, 이 모든 게 낙준의 기억이 아닌, 영애의 무의식 혹은 환상 속 세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두 번째 단서: 심판조차 내리지 못한 영애의 상태

영애는 해숙의 죽음 이후 충격에 휩싸이고, 결국 차도로 뛰어든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그녀가 '지옥'에 있는 것을 본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옥에서조차 영애는 '미분류' 상태다. 심판저울이 작동하지 않고, 누구도 그녀를 천국으로 보내거나 지옥으로 보낼 수 없다.

이건 설정적으로도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일전에 등장했던 아동학대범 노부부는 화탕지옥으로 떨어졌고, 욕심 많은 인물은 환생을 금지당했다. 그런데 폭력, 사기, 거짓말 등을 일삼았던 영애는 '보류'다. 이 점은 무언가 규칙이 깨졌다는 뜻이고, 그 자체가 현실이 아니라 환상, 혹은 꿈의 논리일 수 있다.


 

 

 

 

 

 

세 번째 단서: 과도한 개연성 파괴, 그리고 강아지

〈천국보다 아름다운〉에는 유독 강아지 등장 비중이 크다. 쏘냐라는 강아지는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반면 고양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청자 입장에서 이 동물들의 비중은 이상할 만큼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더 나아가 해숙은 개털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들과 함께 있는 장면이 계속 등장한다.

이건 의도적인 부조화일 수 있다. 영애는 외롭고, 사랑을 갈구하는 캐릭터다. 자신이 키우지 못했던 반려동물에 대한 갈망이 꿈속 설정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 꿈속에서만은 자유롭게 반려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말하자면 자신이 이상적으로 그린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개연성이 흐트러진 이 장면들이 결국 '꿈'이라는 복선을 제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 번째 단서: 도덕 기준의 붕괴

초반에 이 드라마는 분명한 도덕 기준을 제시했다. 거짓말, 질투, 폭력, 협박, 뒷담화 금지 등의 규칙을 어기면 포도알이 줄어들고, 천국행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하지만 중반을 넘기며 그 기준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해숙은 시어머니를 뒷담화한다. 영애는 경쟁자들의 수업 참석을 방해하기 위해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도 둘 다 여전히 천국에 머무르고 있다. 더욱이 영애의 아버지가 천국으로 오게 된다는 예고까지 등장한다. 그는 과거 아동학대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천국에 오는 순간, 이 드라마의 도덕 기준은 완전히 무너진다. 룰이 없는 세계, 무질서의 세계. 이건 현실보다 꿈이라는 해석이 훨씬 설득력을 가진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기억하는가. 김혜자 선생님이 치매 환자였고, 모든 이야기가 그녀의 기억과 환상이었다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도 유사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복선처럼 뿌려진 설정들이 하나로 수렴되지 못하고, 불완전한 연결로만 이어진다.

스토리는 종종 엉켜 있고, 전생 설정이 있어 보이다가도 중간에 끊긴다. 인물 간 관계는 무르익을 것 같다가 흐지부지되며, 시청자는 점점 현실감을 잃어간다. 이 모든 구조는 꿈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와 닮아 있다. 영애는 어쩌면 교통사고 후 혼수상태에 빠져 자신의 죄책감, 외로움, 슬픔, 갈망이 뒤섞인 세계를 무의식 속에서 창조해낸 것일 수 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겉으로는 해숙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영애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세계일 수 있다. 그녀는 교통사고 이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이 세계는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행동들에 대한 자기반성, 미련, 후회, 그리고 구원의 갈망이 만들어낸 판타지일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나오는 전생 환생, 저울, 천국의 규칙, 반려동물, 모성애 같은 소재들은 그녀가 지닌 감정의 파편이다. 결국, 이 이야기가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라는 식의 반전 결말로 이어진다면, 그 또한 나름의 철학적 완결성을 가질 것이다.

물론 시청자로서는 그러한 결말이 씁쓸할 수 있지만, 한 인물의 내면세계를 탐험한 여정이었다고 생각하면 납득도 가능하다. 만약 진짜로 마지막 장면에서 눈을 뜬 영애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면,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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